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-프랑스 전쟁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패전으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극도로 국가주의-애국주의 성향이 강해졌다. 이 과정에서 [[인종차별]]도 더욱 득세하게 되었다. 이러한 변화로 인해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[[드레퓌스 사건]]이다. 드레퓌스 사건은 전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때 나타난 인물이 [[테오도르 헤르츨]]이다. 보불전쟁이 이스라엘 건국에 영향을 끼친 [[나비효과]]이다. * 이 전투에서 당대의 화가인 [[프레데리크 바지유]]가 최하급 [[장교]]로 참전해서 전사했다. * 또 이 시기에 불어 역사상 특이한 언어 운동도 일어났는데 ''''[[구개수음#s-2.6|구개수 전동음]]'으로 발음되던 r을 라틴어처럼 '[[치경음#s-2.7|치경 전동음]]'으로 발음하자는 복고 운동이 일어났다.''' 특히 적대국인 프로이센/독일을 위시한 주변국에서 유럽의 중심이라면서 정작 대부분 유럽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전동음을 구사할 수 없다고 깐 적이 있기 때문이다. 패전한 뒤에 얼마 안 있어 1888년 [[국제음성기호]]가 막 발표되던 참이라 음성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태동되고 있던 시기였다.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이후로 독일어 역시 [[바이에른]]을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구개수 전동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. 오늘날 표준 독일어의 r발음이 가글하는 듯한 발음인 이유. * 특히 [[오를레앙]]이 함락당하고 [[알자스-로렌]]을 빼앗긴 탓인지 [[백년전쟁]] 당시 [[로렌]] 지방 출신이면서[* 다만 독일로 할양된 모젤 지역이 아닌 프랑스에 잔류한 동레미 출신이다.] 오를레앙을 지켜냈던 [[잔 다르크]]가 국민적인 영웅으로 더욱 부각되었다.[* [[나폴레옹 보나파르트]]가 별 볼 일 없던 잔 다르크를 영웅으로 조작했다는 수정주의 이론이 교양 지식처럼 퍼져 있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는 시각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. 자세한 내용은 [[잔 다르크]] 문서 참고.] * 비스마르크에 낚인 [[나폴레옹 3세]]는 프랑스 공화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제 퇴위당하자 갈 곳을 잃고 영국에 망명해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했다. * 한편 전쟁의 양상을 보고 유럽 각국에서 [[참모]] 체계의 유용함을 목격하고 프로이센과 비슷한 참모 체계를 배우고 각국에 적용하는 계기가 된다. 19세기 초반까지 '''지휘관'''의 전술적인 능력에 의존하던 전쟁의 양상이 [[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|보오전쟁]]과 보불전쟁을 통해 효율적인 '''참모 체계'''로 병력 동원, 이동, 지형 연구, 장비 및 병력 보급에 이전까지 주먹구구식으로 행해졌던 것을, 군에도 기술화된 '관료'인 [[참모]]들이 좌우하는 현대적인 양상의 전쟁이 시작된 셈. * 한편 [[프랑스군]] 또한 참모 제도를 도입해 이번 전쟁에서 계획이 철저하지 못했던 점을 반복하지 않게 했고 장비를 현대화했으며 철도를 이용한 보급과 증원 체제를 정비했다. 그 결과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발발하자 독일의 [[슐리펜 계획]]이 먹히기 시작하고 프랑스의 [[제17계획]]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 도달했음에도 보불전쟁의 교훈을 이용해 꾸역꾸역 방어에 성공했으며, 결국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자는 프랑스가 되었다. * 이 전쟁의 영향으로 [[이탈리아 왕국]]이 [[교황령]][* 당시 교황령에 프랑스군이 주둔하여 교황령을 보호하고 있었다.]을 무력으로 정복하면서(1870년) 이탈리아가 통일을 완수하게 된다. 사실 미수복 지역도 있어서 [[1차 대전]] 당시 [[이탈리아 왕국]]이 협상국 측에 서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. *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투사하던 세계 열강에서 본토도 털리는 국가로 전락한 프랑스의 영향력이 급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. 거기다 근대화를 진행 중이던 동북아 국가들에게도 보불전쟁의 결과가 영향을 끼쳤는데 [[일본 제국]]은 근대군과 국가발전 모델을 프랑스가 아닌 프로이센으로 잡게 되고 훗날 [[대한제국]] 또한 그 이유 때문에 독일 제국의 교관단을 초청하려 하였으나 독일 측에서는 미적지근했고 거기다 [[https://blog.naver.com/kkumi17cs1013/221721449479|아주 멸시어린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]] 미국 교관단을 초청하고 근대군 모델을 프랑스로 잡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